고전시

王昭君 李白

예성 예준 아빠 2010. 4. 9. 08:48
王昭君                         李白

 

 

   漢家秦地月  流影送明姬  (한가진지월  유영송명희)

   一上玉關道  天涯去不歸  (일상옥관도  천애거불귀)

   漢月還徒東海出  明姬西嫁無來日  (한월환도동해출  명희서가무래일)

   燕支長寒雪作花  蛾眉憔悴沒湖沙  (연지장한설작화  아미초췌몰호사)

   生乏黃金枉圖畵  死留靑塚使人蹉  (생핍황금왕도화  사유청총사인차)  

   昭君拂玉鞍  上馬啼紅頰  (소군불옥안  상마제홍협)

   今日韓宮人  明朝胡地妾  (금일한궁인  명조호지첩)

 

   한나라 진 땅의달이  흐르는 그림자로 명비를 전송하네

   한번 옥문관을 나서  하늘 끝으로 가서는 돌아오지 않네

   한나라 달은 여전히 동해에서 떠오르 건만 명비는 서쪽으 시집가

   내일을 기약 할수 없구나

   오랑캐 땅은 언제나 추워 눈이 꽃을 이루니

   미인은 초췌하여 오랑캐 땅에 묻혔으리

   살아서는 황금이 모자라 초상화를 잘못 그리게 하더니

   죽어서는 푸른 무덤을 남기어 사람들을 탄식케 하는구나

   왕소군이 옥안장을 떨며  말에 오를제 붉은 두뺨에 눈물이 흐른다

   오늘은 한나라의 궁인이드니  내일 아침엔 오랑캐의 첩이 되었구나

 

중국의 4대 미녀는를 양귀비, 초선, 왕소군, 서시를 이른다.

왕소군은 자는소군이요 이름은 장으로 한나라 4대 황제인 원제때 후궁으로 간택되어 궁궐에 살다가 흉노 선우 호한야에게 출가하여

흉노에서 생애를 마친 비운의 여인이다.

왕소군이 흉노의 선우에게 출가하게 된 사연이 기구하다.

한나라 시절엔 황제의 후궁으로 수백명의 여인을 간택 했다고한다 그래서 일일이 황제가 면접을 할수없으므로 화공을 시켜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황제에게 바치면 황제가 그림(초상화)보고 시중들 후궁을 선정 하였다한다.

그러니 황제의 눈에 들게 하려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여 소위 뽀샤시하게 그리도록 뇌물을 화공에게 바치는 것이 관례와 같이 성행 했다고 한다.

그러나 왕소군군은 시체말로 시골구석에서 인물 하나로 뽑혀 왔으니 바칠 뇌물이 있을 턱이 있겠는가? 

그래서 땡전한푼 바칠수가 없었으니 환쟁이 양반 뿔이 날대로 나서  그림을 흉하게 그린다음 땡칠이 점까지 쿡 찍어놓았겠다.

그러니 당연히 간택이 될리 없지.......그러니 궁에서 잡일이나 하고 황제 코빼기도 못 봤겠지.

 

그당시 흉노가 강하여 한나라의 골치덩어리 였으니 매년 흉노의선우를 불러다 잘먹이고 달래며 잔뜩 선물 보따리를 앵겨 돌려 보내는 것이 관례 였다. 선물 보따리중엔 양국의 친목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황족중 공주를 결혼시키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흉노의선우를 위하여 잔치를 벌려 한참 흥이 일었는데 음식을 들고 나오는 궁녀를 보니 천하일색이라.......

황제도 놀라고 선우는넋을 잃고..........선우가  황제에게 이번 결혼할 공주는 저여인을 주시옵소서 하니 허락을 아니할수가 없는지라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여인이 바로 왕소군이다.

일이 있고 황제가 하도 억울하여 결혼예물 준비차 이핑게 저핑게를 대고 3일을 품었다든가 어쨌다든가. 그리고 사연을 캐보니 환쟁이 모연수양반 작란이라 당장 참형에 처했다한다. 

어쨌건 흉노에게 출가한 왕소군은 흉노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 애통한 사연을 이백시인이 한줄의 시로 읊었으니 바로 이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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