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

운초 시의 향기

예성 예준 아빠 2010. 4. 9. 08:48

운초 시의 향기

 

수많은 시 들 중에 몇 편을 선정하여 감상하며 시 향연에 빠져본다.


1) 暮春 出 東門(모춘 출 동문: 늦은 봄에 동문을 나서며

日永山深 碧艸薰(일영산심 벽초훈)

一春歸路 査難分(일춘귀로 사난분)

借問此身 何所似(차문차신 하소사)

夕陽天末 見孤雲(석양천말 견고운)


날은 길고 산

운초 시의 향기

은 깊어 풀 향내 짙어졌으니

봄이 가버린 길이 묘연해 찾아내지 못하겠네.

그대에게 묻노니 이내 몸이 무엇 같던가!

저녁노을 하늘 끝에 외로운 구름만 보이네.



2)惜春(석춘: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孤鶯啼歇 雨絲료(고앵제헐 우사료)

窓掩黃昏 暖碧紗(창엄황혼 난벼사)

無計留春 春己老(무계유춘 춘기로)

玉甁聯揷 假梅花(옥병련삽 가매화)


외로운 꾀꼴새 울기를 그치고 실비는 비껴 내리는데

저녁노을이 창에 덮이자 푸른 비단이 따뜻해라

가는 봄 붙잡아 둘 계책이 전혀 없으니

꽃병에다가 매화나 꽂아 두어야겠네.


3)落梅(낙매: 지는 매화

玉貌氷肌 冉冉哀(옥모빙기 염염애)

東風結子 綠生枝(동풍결자 록생지)

纏綿不斷 春消息(전면불단 춘소식)

猶勝人間 恨別離(유승인간 한별리)


옥 같은 얼굴 얼음 같은 살결이 애틋하게 여위었는데

봄바람에 열매 맺고 푸른 가지도 돋았네.

그치지 않고 봄 소식을 알려주니

인간세상의 한스런 이별보다 오히려 나아라.


4)過山村(과산촌: 산마을을 지나다가

花落流水 似天台(화락유수 사천태)

千尺危岩 屹古臺(천척위암 흘고대)

四顧山空 人語絶(사고산공 인어절)

林風吹作 雨聲來(임풍취작 우성래)


흐르는 시냇물에 꽃이 떨어지니 천태산 같아

천 척 높은 바위까지 우뚝 솟았네.

사방을 둘러봐도 산이 텅 비어 말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숲에서 바람이 불어와 비 오는 소리를 내네.


*천태산(天台山)은 중국절강성에 있는 명산이라 한다.


 5)香山途中(향산도중: 묘향산 가는 길에

桃花馬上 石榴裙(도화마상 석유군)

一路繁華 四使君(일로번화 사사군)

未入仙區 心已醉(미입선구 심이취)

碧雲蒼樹 査離分(벽운창수 사이분)



복숭아꽃 안장 위에

석류무늬 치마로

한 길에 나서니

네 분의 사군까지 화려키도 하다

신선이 있는 곳

가기 전에 마음이 이미 취해

푸른 구름, 푸른 나무를

분간키 어렵구나.


*향산(香山)은 묘향산을 말하며 영변에서 북쪽으로 130리쯤에 있다.


6)杏花村(행화촌)

輕舟一葉 泊平沙(경주일엽 박평사)

流水靑山 進士家(유수청산 진사가)

未刦村中 名己好(마겁촌중 명기호)

東風紅落 滿庭花(동풍홍락 만정화)


일엽편주를 모래밭에 대니

청산유수가 진사의 집일세

마을에 닿기도 전에 이름부터 좋아서

봄바람에 떨어진 꽃잎들이 뜨락에 가득해라.


부용당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옥구슬 일천 섬을

유리 쟁반에 쏟아 붓는구나.

알알이 동그란 모양이

물나라 신선이 빚은 환약일세.


*행화촌은 살꽃이 피는 마을로 조선에 살구꽃이 안 피는 마을이 어디 있으리오.

한시에서는 주막을 의미한다. 두목(杜牧)이 지은 청명시(淸明詩)에 길손이 주막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 살구꽃이 핀 곳을 가르치네. 라는 시가 유명해지면서 봄경지의 주막을 의미한다. *


7)送人(임을 보내며)


春風驛路 雨如絲(춘풍역로 우여사)

日暮西樓 唱竹枝(일모서루 창죽지)

君去試看 淸浿上(군거시간 청패상)

衣冠猶似 井田時(의관유사 정전시)


봄바람 부는 역로에 실처럼 비가 내리는데,

날 저문 서루에서 죽지사를 부르네.

그대 가면서 맑은 대동강 위를 보소

정전을 갈던 그 시대와 옷차림이 비슷하다오.


8)題烈女金氏旌門(제 열여김씨정문: 김씨의 열려문에다

古木荒山 集亂鳥(고목황산 집난조)

前當猛虎 遂捐軀(전당맹호 수연구)

金玉貞姿 氷雪操(구옥정자 빙설조)

不知有我 但知夫(불지유아 단지부)


늙은 나무 거친 산에 까마귀들이 어지럽게 모여들었는데

사나운 호랑이 앞에 자기 몸을 내던졌네.

금옥처럼 정숙한 자태 빙설 같은 정조 지녔기에

내가 있는 것은 아지 못하고 다만 지아비만 알았네.


*열려 김 씨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남편을 구하고 대신 죽어 조정에서 정문을 세워

그 효행과 절의를 귀감 한다.



9)芙蓉堂(부용당

朝起芙蓉 宿雨滋(조기부용 숙우자)

乍晴高館 燕羞池(사청고관 연수지)

灑落珠璣 千萬顆(세락고관 천만과)

微風傾瀉 碧琉璃(미풍경사 벽우와)



淸歌一曲 海天賖(청가일곡 해천사)

十二紅欄 泛月華(십이홍란 범월화)

雲母屛頭 銀燭下(운모병두 은촉하)

住人步步 出蓮花(주인보보 출연화)


아침에 일어난 부용이 지난밤 비에 더 맑아지고

날개인 부용당 앞에는 제비가 못 위를 날아오르네.

깨끗한 옥구슬 천만 알들이

가냘픈 바람에 쓸려 푸른 유리 위로 쏟아지네.



맑은 노래 한 가락을 바다와 하늘이 내려주고

붉은빛 열두 난간을 달빛이 띄웠네.

운모병풍 머리 은 촛불 아래서

미인의 걸음걸음마다 연꽃이 피었네.


*부용(芙蓉)은 연꽃의 이명으로 운초의 이름이 부용이다.*



10)戱 題(희제:부용화가 예쁘다더니

芙蓉花發 滿池紅(부용화발 만지홍)

人道芙蓉 勝妾容(인도부용 숭첩용)

朝日妾從 堤上過(조일첩종 제상과)

如何人不 看芙蓉(여하인불 간부용)


부용화가 곱게 피어 연못가득 붉어라

사람들 말하기를 내 얼굴보다도 예쁘다네.

아침녘에 둑 위를 걷고 있노라니

사람들이 부용화는 왜 안보고 내 얼굴만 보나.  



운초 묘에 얼긴 일화




실전한 운초 김부용의 묘소를 찾게 된 사연은 1975년 중반쯤에 소설가 정비석 선생께서

명기 열전을 지으면서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그의 남편 무덤이 고향인 천안군 광덕면에 있다는 기록하나만 가지고 광덕면을 수차례 답사하여 당시 광덕면 광덕리 대거리에 살면서 젊어서 김대감의 묘소관리인 서상욱(徐相旭)씨에 의해서 관리되고 있었던 봉조하 김이양 대감의 묘소와 초당마마의 묘소를 찾아서 (운초 김부용을 서울 남산 밑에 살 적에 동리 사람들이 초당마마라 불리었다.) 당시 천안에서 동방서적을 운영하던 김성열씨 노력으로 봉분이 개축되었으며 비석도 세웠다. 백방으로 노력한 김성열씨의 덕으로 천안 문인협회와 더불어 지금은 많은 단체에서 진달래꽃이 만발하는 4월이 되면 천안의 광덕산에선 운초의시향을 찾아 많은시인 묵객들이 향을사르고 그의시향에젖는다.   




글 말미에



한 시대를 살다간 기생의 묘하나를 가지고 또한 그가 남긴 시 몇 개를 가지고 한 시대의 흐름을 알 수는 없으나 가름할 수는 있다.  부용의 시에 반한 자가 있어 그 시로 인하여 운명이 바뀌니 그가 봉조하를 지낸 김이양(金履陽)대감이다. 서로 시로서 오가며 서로 존경했다. 김이양은 1775년생으로 호는 연천(淵泉)이고  안동 김문이며 한성판윤을 지내고 예조판서 이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순조의 부마였으며 말년엔 최고의 벼슬인 봉조하(奉朝賀)에 이르렀다. 시라는 무기로 조선조 사회에서 살아온 그녀는 김이양이라고 하는 큰 산이 있었고 나중에 김 대감의 소실이 되어 그를 사모하다 젊은 나이로 죽을 때 같이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이곳 광덕산 부군의 묘역 부근에 안장하게 된듯하다. 당시 광덕사란 절이 있어서 묘소를 쓰기엔 불가능했다. 조선 최고의 벼슬 봉조하를 지냈고 임금의 장인인 권세를 막을 자는 없었다. 광덕사 대웅전 뒤로 올라가 높은 경치 좋은 그야말로 명당에 본부인과 합장하여 장사 지냈고 운초는 부군묘역에서 바라다보이는 능선 아래 모셔져 잊혀졌다. 추상같던 권력과 명예도 허망한 세월이 흘러 자손들은 멀어져 아니오고 묘소엔 쓰러진 석물과 잡목 많이 무성하고 잊혀 지금은 그 묘소자리조차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350여 수의 주옥같은 시를 남길 운초는 다시 태어나 수많은 벗과 노닐고 있다. 늦가을 어느 날 광덕산을 등산하다 들린 부용당엔(운초묘소) 올해도 벌초하는 사람이 없어 묵어있었다, 명심보감에 "사람은 살아서 백 년 살기가 어렵고 죽어서 봉분을 백 년 지키기가 어렵다고 했다" 등산배낭에서 낮을 꺼내 벌초를 하고 내려오며 시를 하나 지었다.


부용당                  


광덕산 오름에

초라한 무덤 하나 부용당,


부군을 따라온

부용화는 예쁘구나.


잊혀진 세월

기나긴 연정,

기다림에 지친 부용은

매년 4월을 기다린다.


국봉이 찾아온

그 자리엔,

잡초 많이 무성하고.


연화주 한잔에,

부용은 취하여

꽃들과 노래한다.


부용화는 예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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