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청년 시 119: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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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지를 읽는 가운데 에이즈에 걸려 찾은 자유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서는 쿠바 청년이 자유를 찾기 위해서 스스로 에이즈에 걸렸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그 청년은 에이즈에 걸리기 위해서 스스로 에이즈 요양소에 찾아가 거기에 있는 사람의 피를 수혈받아 스스로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 이유인 즉은 에이즈 요양소에는 자유가 있다는 것, 하루 세끼 식사를 제공해 준다는 것, 에어콘이 가동된다는 것, 정권도 없다는 것, 경찰도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을 들고 있다.
기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또 소개하고 있다.
그 사람은 후안 카를로스 킨타나라는 21살난 청년의 내용이다.
그 청년도 역시 에이즈에 걸리기 위해서 일부러 에이즈 요양소에 찾아가 피를 수혈하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 그가 사랑하고 있는 17살난 여자 친구가 에이즈에 걸려 요양소에 있는데 사랑하는 여인과 떨어지기 싫어서 자신도 에이즈에 걸리면 같은 요양소에 있으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에이즈에 걸린 피를 수혈하였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말을 들으면서 무엇을 생각하는가?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육신의 고통을 감안한다고 하는 아름다운 인권 운동가를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운 남녀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도대체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웃기지도 않는 일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히려 사랑을 위해서는 아름다운 일처럼 여겨지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온통 죄악으로 만연된 세상이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하게 할 정도로 타락되어 있다.
미국의 센프란시스코는 소돔과 고모라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도 다를 바가 없다.
성윤리가 극도로 타락되어 있으며 교육계, 정치계, 종교계, 문화계등 모든 분야가 다 변색 혹은 퇴색되어 타락의 일로를 걷고 있다.
교육계의 타락은 교사의 권위가 매도되어지게 되었으며, 정치계의 타락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국민을 볼모로 잡아 흔들고 있다.
종교계의 타락은 진리의 추구보다는 진리를 이용한 치부에 앞장서 있다.
이런 일들은 구약 시대에도 있었다.
입에 물리면 평강을 외치고 주는 것이 없으면 서슴 없이 저주를 하였던 것이다.
경제 윤리는 어떤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악도 서슴치 않고 저지르지 않는가?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남을 밟아야 하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많이 흐트러졌다. 자식에 대한 편애도 문제지만 부모에 대한 공경이 없다.
용돈이 필요해서 부모를 죽이고도 양심에 찔림을 받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 보이는 시대다.
한국판 카사노바의 사건은 어떤가?
박인수라는 사람은 70여명의 여인을 농락했는가 하면 요즈음에는 N씨라는 46살의 중년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103명이나 되는 여자와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 때문에 저지러진 이 죄악은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구속할 법이 없다고 하니 법조계 또한 타락한 것이 아니라고 누구도 단정지을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일들을 보건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가히 짐작할만 하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와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항상 우리를 유혹하여 동참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청년은 이런 가운데서 뭍어 살고 있다.
여기에서 동참하느냐 도피하느냐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동참하든 도피하든 어쨋든 여기에 뭍어 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뭍어 가는 생활의 특징은 무디어지는 것이다. 윤리관이나 도덕관이나 가치관이 점차적으로 무디어진다.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자꾸 눈으로 보다 보면 무디어지게 되어 있고, 무디어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동참하게 되어 있다.
고린도 교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항구에 살았다.
그들은 항상 항구를 드나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윤리적으로 문란하고 종교적을 혼합되어진 생활을 접하면서 살았다.
그 결과 그들은 점차적으로 그런 환경에 무디어지게 되었고 결국은 자신들도 거기에 빠지게 되었다.
그들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혼돈되어진 가치관은 그 가운데 사는 기독교인의 가치관을 철저하게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신앙관의 흔들림과 가치관의 흔들림은 그들의 삶 자체를 흔들어 놓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그림을 하나 그렸는데 다소 풍자적인 그림을 그렸다. 세상에 물들어 가는 기독교를 풍자하는 그림이었다.
그림의 내용을 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배가 물속으로 빠져들어가는데 설상가상으로 배에 구멍이 생겨서 배가 급속도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었다.
교회가 타락하여 세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데 거기에 내부적 갈등마져 생겨 급속도로 빠지고 있는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이것은 교회만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내 속에 무너져가고 있는 신앙과 윤리를 질타하고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거룩한 것 같고 신앙생활이 바로 있는 것 같은데 그 속에는 썩은 것들로 가득차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을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다.
교회에 앉아 있는 모습은 거룩하지만 그들의 삶은 더럽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의인 10명이 없는 소돔과 고모라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하는 안타까움이 많은 시대다.
이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그 속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
지금 이 시대는 위기다.
위기의 유혹이 우리와 함께 있다.
위기 관리 능력과 위기 대응 능력이 없는 정부는 정부로써 실존해야 하는 의미를 잃는다고 하는데 이러한 유혹의 환경 속에서 나는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
1. 정결의 필요성 |
이렇게 유혹받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결을 요구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런 죄악의 세상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비록 그런 죄악의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거기에 물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정결된 삶을 요구하고 계신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가 얼마나 크게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정결하게 있느냐가 하나님 편에서는 더 중요한 것이다.
큰 집에는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을 깨끗하게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다.
특별히 지금과 같이 죄악이 만연된 세상에서는 더욱 더 정결이 요구된다.
그래야만 빛으로서, 소금으로서 사명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말로 전할 때가 아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을 보고 믿지 않는 그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우리의 정결된 행동이 요구되고 있다.
물질적으로 깨끗한 삶을 요구하고 계신다.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요구하고 계신다. 육적으로 깨끗한 삶을 요구하고 계신다.
영적으로 깨끗한 삶을 요구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의 혼과 영과 몸이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신다.
특히 청년의 때에 정결하게 살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본문에서도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청년의 때는 더 많은 유혹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만큼 죄에 오염될 가능성이 더 많은 시대다.
무력은 피할 수 있어도 유혹을 이기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청년의 때에 더욱 더 정결하게 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에 수련회에 참여하는 모든 청년들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깨끗한 청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왜 우리에게 정결이 필요한가? 왜냐하면 한 번 생긴 흠은 일평생 따라 다니면서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의 흐트러짐으로 생겨진 흠집은 회개한 이후라고 할찌라도 항상 껄끄러움으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비유의 글을 썼다. 하루는 왕이 궁내에 있는 모든 동물 중에 꼬리가 있는 것은 다 죽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개구리가 연못 속에 들어가서 울고 있더란다. 하루는 메기가 와서 자기들이야 꼬리가 있으니까 죽을까봐 두렵지만 개구리 너는 꼬리가 없는데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개구리가 하는 말이 내가 예전에 올챙이 적에 꼬리가 있었던 것을 임금님이 알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래서 두려워서 운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것이 늘 올무가 되어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판 이후에 나중에 나라에 흉년이 들어 음식을 구하러 애굽에 갔다가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났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서 이제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애굽에 내려가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버지 야곱이 죽었다.
그 때 형들의 마음이 어떠했는가? 창 50:15에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고 그 동안에 같이 살면서 요셉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용서했다.
그러나 죄를 지은 당사자들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죄의 모습이다.
자꾸만 생각나게 해서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젊은 날에 한 번 생겨진 흠은 없어지지 아니하며 신앙생활에 계속 장애적 요소로 남게 된다.
그러므로 청년의 때에 자신의 영육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결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심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악의 더러운 것과는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개인의 정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가? 깨끗한 심령을 소유하라.
정결치 못한 사람의 특징은 내려가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서 푯대를 정해놓고 올라가는 생활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내려가는 생활을 한다.
마치 요나가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다가 배 밑창으로 내려가는 것과 같이 점차적으로 내려가는 생활을 한다.
흉년을 만난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내려간 것과 같이 내려가는 생활을 한다.
아브라함은 내려가서 그 곳의 왕 아비멜렉에게 창피를 당했다. 내려가는 자의 생활은 정결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이삭도 흉년으로 인해 내려가는 생활을 했다.
2. 방해하는 것들 |
마귀는 우리가 거룩한 생활을 계속하므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활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방법을 다 동원한다.
어떤 때는 힘을 사용하여 강압적으로 방해하기도 한다.
건강을 빼앗아 가고, 직장을 빼앗아 가고, 물질을 빼앗아 가고, 생명을 빼앗아 간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너무 많은 것을 주어서 착각을 일으켜 거룩한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너무 지나친 건강을 주어서 그것으로 정욕을 위해 사용하게 하고, 너무 많은 물질을 주어서 그것을 사용하느라고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마귀의 공격은 얼마나 지혜스러운지 일반적인 눈을 가지고는 그 방해를 알아 차릴 수가 없다.
어떤 때는 마치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인양 착각하게 한다.
요나가 니느웨를 피하여 다시스로 갈 때 순조로이 배를 만났던 것과 순풍이 일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착각을 일으키게 했던 것들이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정결을 방해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요일 2:16에 말씀하기를 인간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때문에 거룩한 생활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육체를 좇아 일어나는 것들이다. 인간의 욕심이 문제다.
욕심은 죄를 낳게 하고 그 결과는 사망을 가져오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딤전 6:9에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서 떨어지나니”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정욕은 사람을 파멸로 인도하는 길임을 뻔히 알면서도 마치 푸주간으로 끌려가는 소 처럼 정욕을 따라 간다.
물질로 빚어진 잘못은 갚으면 되고 사과하면 되지만 그릇된 정욕에서 나오는 일들은 갚을 길이 없다.
딤후 2:22에서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하면서 청년들의 경건된 생활을 강하게 명령을 하고 있다.
자랑하는 것 역시 우리로 하여금 경건생활을 방해하게 한다. 어떤 집사님이 딸 자랑하는 소리를 들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자랑할만 하였다.
남들 처럼 유명한 교수 밑에서 렛슨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좋은 대학에 쉽게 들어간 것과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받게 된 것과 유학의 길이 열리는 것이 정말로 자랑할만 하였다.
그 집사님은 자랑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란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하나님께 은혜를 돌린다기 보다는 자기 자랑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집사님이 간 후에 얘기를 듣던 다른 집사님들의 말이 그 집사님은 너무 자랑을 많이 하기에 별로 친근감이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렇다.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이라 할찌라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자랑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자기 자랑을 지나치게 하는 사람은 결국은 그것이 올무가 되어서 자기의 경건을 해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가 기도하면 병자가 낳게 되고, 신비적 체험이 일어나게 되며, 심지어는 죽은 자까지도 살아나게 되는 역사가 있었다. 얼마나 간증할 것이 많으며 얼마나 자랑할 것이 많이 있겠는가?
나는 사도 바울을 볼 때에 그 분이 삼층천을 보았노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대단한 관심을 가진다.
그는 대단한 신비적 체험을 했다. 천국을 직접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바울인들 어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바울은 자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못난 것을 자랑하였고 복음을 자랑하였다.
분위기 또한 우리의 경건 생활을 방해한다. 분위기는 참으로 중요하다.
은혜스러운 분위기가 있는가 하면 멜로딕한 분위기가 있다.
사람 사는데 분위기는 참으로 중요하다. 분위기 없는 여자, 분위기 없는 남자는 참 재미가 없다.
사람은 분위기의 동물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분위기를 잘 타는 사람은 지성이 있어 보이고, 개성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야성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영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영성을 해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탄은 우리의 경건을 해치게 하는데 있어서 이런 분위기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발을 묶어 놓는다. 마약 밀매 조직에 빠지게 된 사람은 죽음이 아니고서는 빠져 나올 수 없다고 한다.
마귀가 우리를 이용하는 분위기는 마치 이와 같다. 우리는 항상 경건한 분위기, 은혜를 사모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 외의 것들은 순간적으로 재미 있을런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신앙의 손해를 초래하게 된다.
성취 후의 자만심도 우리의 경건을 방해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한 것은 감사하지만 거기에 도취되어서 사는 것은 경건을 잃게 하는 요소가 됨을 알아야 한다.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홍수의 심판을 받는데서 구원을 얻었다. 그러나 노아가 한 일은 무엇인가?
술취함으로 누추한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닌가?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다.
믿음이 있노라고, 내 속에 예수가 있노라고 자신을 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 때문에 넘어지는 일들이 허다하다. 이것은 내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적이다.
자신을 위해 쳐 놓은 울타리 또한 우리의 경건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절대적인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옳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경건을 잃게 한다. “우리”라고 하는 울타리는 타인을 받지 못한다. 요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 때문에 경건을 잃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게 되었다.
가룟유다는 어떤가? 예수님의 태도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열심과 같지 않았다.
그 결과 예수님을 팔아버렸다. 자신의 판단이 하나님을 앞서갈 때에 그는 이미 경건을 잃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판단이 강단에서 전파되는 말씀을 앞서며 판단하려고 하는 것 역시 하나님을 향한 경건을 잃게 하는 요소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나사렛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나친 울타리 때문에 결국에는 예수님도 거절하였던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관계 보다는 소유를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성이다.
로울 하우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선물은 관계성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뒤집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계성 속에서 만족하지 않고 소유함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관계는 love person, use things다.
그런데 이것이 바뀌어 지금은 use person, love things가 되었다. 가치관의 혼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관계가 쾌락과 소유로 변모해 버렸다.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은 자져야 속이 시원하게 되었다.
산길을 걸어가다가 예쁜 꽃을 보면 꺾어야 하고, 백화점을 지나다가 좋은 물건을 보면 사야 하고,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결혼을 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안되면 한이 싸이게 되고, 한이 싸이니까 한풀이를 하려고 한다. 그러니 목사의 장례식에 한풀이가 등장하게 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일들에서 깨끗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3. 깨끗해지는 비결 |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깨끗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깨끗해지는 비결이 무엇인가?
경건에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면 된다. 본문에 이르기를 주의 말씀으로 된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깨끗하게 될 수가 없다. 주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청년의 힘과 정열을 믿음으로 정화시켜 정결한 삶을 살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더 힘 있게 추진하게 한다.
요셉이 젊은 날을 정결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기도 운동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 둘 중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안된다. 이 두 개는 새의 양 날개와 같다. 배의 양쪽 노와 같다.
영성 회복
말씀과 기도는 영성을 회복시켜 준다. 영성이 회복되어야 정결한 삶을 살 수 있다. 영성 회복은 성령운동이다.
죄악으로 묵은 땅을 일굴 수 있는 비결은 성령 운동이 일어나야만 한다. 메마르고 갈라진 땅을 적실 수 있는 성령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제대로 볼 수 없는 눈이 바로 볼 수 있고, 제대로 들을 수 없던 귀가 바로 들을 수 있는 성령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묵은 땅은 쓸모 없는 땅이지만, 길도 없는 땅이지만 그러나 갈고 닦으면 그 동안에 축적되어진 양분 때문에 좋은 곡식을 산출할 수 있다.
재미 있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옛날에 시골에 사는 어떤 여자가 일평생 한 번도 세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는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 갔는데 산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한 눈에 사랑을 느꼈다. 그 남자는 그 나라의 왕자였다.
그런데 그 남자자 하는 말이 세수를 하면 사랑을 수락하겠노라고 했다. 그래서 그 여자가 그 동안에 묵었던 때를 다 닦았다.
그랬더니 뽀안 속살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웠다고 한다. 둘은 사랑을 나누었고 결국에는 결혼을 했다는 얘기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런데 이 말은 죄로 더러워진 우리, 한 번도 세수한 적이 없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고 사랑을 느껴서 모든 죄악을 씻어 버리는 것임을 비유로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큰 은혜가 된다.
성령 운동은 회개 운동이다. 오순절의 성령 운동 후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한 번에 3천명씩, 5천명씩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들은 옷을 찟은 것이 아닐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돌아오는 회개를 하였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성령 운동이다. 성령에 의한 회개 운동이다.
성경이 중요해서 성경 교육을 중점으로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지만 유감스러운 것은 그 것이 지식에 머무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령 운동이다.
요즈음은 제자 교육이 인기가 있다. 제자 교육을 하는 교회가 부흥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너무나 많은 독소가 포함되어 있다.
제자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제자를 만들며, 훈련된 그들이 어느 곳에 가서나 사역하는 제자가 아닌 자기 스타일 위주의 아집에 싸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결정적인 것은 그들에게 영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헌신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오직 성경공부일 뿐이다. 영적 비만에 걸려 있다. 머리만 커지는 신앙인이 되어버렸다.
기도 운동 없는 성령 운동은 기형적 신앙을 만든다.
제자훈련으로 성공한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그 한계성을 느끼고 순복음 교회에 찾아가서 성령 운동이 무엇인지 상담을 했다는 말을 듣고 느낀 바가 크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성령의 사역이요, 내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것인데 그것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체험하지도 못하고 교육만 애쓰고 있으니 어찌 제대로 되었겠는가?
성경을 보면 교회의 부흥은 성령 운동에 있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번 수련회에 참석한 청년들도 진정으로 깨끗하고 신실한 신앙인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성령의 충만을 받고 영성이 회복되기를 축원한다.
부활 신앙
성령 운동이 일어나게 되면 부활 신앙이 회복되어진다.
부활 신앙은 우리의 삶을 촉진시켜줄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이론적 신앙이 아닌 살아서 움직이는 신앙은 바로 부활 신앙에서 나온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는 부활 신앙이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 부활 신앙이 있어야만 했다.
이론상의 부활 신앙은 뜨거움이 없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부활을 고백하던 마르다의 연약함과도 같은 부활 신앙이다.
그 결과로 낙심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려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 후에 그들의 신앙은 뜨거워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활신앙이다.
이 다음에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지금 살아서 이루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삶의 활력소가 넘치게 된다.
하나님과 동행
부활신앙이 회복되어진 자는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동행할 수 없다.
결혼을 해야 한다. 하나님과 결혼을 해야 한다. 사실 나는 청년회 수련회를 오면서 이런 주제가 나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그래서 고후 11:2의 말씀을 가지고 중매장이 바울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할 기회가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런 주제는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지나가야 하겠다.
내가 청년부를 맡았던 시절에 그 부서 안에서 결혼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그래서 내 달란트는 교회 내의 청년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에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기도하기를 잊지 않았던 것은 이번 수련회가 마치면 그 동안에 결혼의 문제로 고민했던 사람들의 기도의 응답이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었다.
수련회가 끝난 다음에 초청장이 많이 날아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에녹은 당대의 의인었다. 그가 의인이 되었던 것은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이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 므두셀라의 이름은 “창을 든자, 심판”이란 뜻이다.
에녹이 하나님을 동행한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므두셀라가 죽은 직후에 노아의 홍수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 하나님과 동행했던 것이다. 깨끗케 되는 비결은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는 자는 정결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결론을 맺는다. |
청년의 때는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의욕도 많다. 힘도 넘친다.
그러나 수 많은 유혹도 있다. 이런 때에 어떻게 살 것인가?
영성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부활 신앙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자신를 깨끗하게 지켜서 하나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엠마오로 향하는 낙심하는 제자들이 아니라 다시 예루살렘을 향하여 피곤한 몸을 털고 뛰어 올라가는 제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더러워진 돼지와 같이 무분별한 삶을 살지 말기를 바란다.
토한 것을 다시 집어 먹는 개와 같은 생활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깨끗한 삶을 살아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청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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