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배 사역을 위한 제안들
예배는 청년부 사역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입니다. 청년들이 잘 모이고 부흥하는 청년 대학부는 예배에서 그 성장의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프로그램과 행사로 청년들을 모이게 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영감 있는 예배가 되도록 하는 노력이 없이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예배가 가장 근본이기에 여기에서 제대로 기초를 쌓지 않으면 어떠한 노력도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는 감상적으로 드려야 하는가?
청년들은 찬양 집회를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기를 원하고 찬양은 이들의 감성적인 면에 맞는 예배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배가 항상 새롭고 무언가를 느끼게 만들어 주는 예배이기를 원합니다. 같은 내용의 순서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찬양을 많이 부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배의 대상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려고 한다면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세워 놓고 예배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배의 관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 종은 울리나?
예배의 대상이 분명해야 예배가 제대로 드려집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최대의 경외와 경배를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그분에게 드려야할 최고의 경배와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 예배'를 드릴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 12:1)고 합니다.
나 자신이 기뻐하는 산 제사가 아니라 그 기뻐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몸 전체를 송두리째 드려지는 예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완전하게 드릴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예배 시간입니다.
만일에 우리 자신이 예배에서 만족스럽고 충만한 느낌을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이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진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의 만족을 위해 예배 진행을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의 목적과 근본을 기초로서 잘 세우고서 그 다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추구하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것
태만함
매주일 예배를 반복해서 드리기 때문에 준비 없이 예배를 드릴 때가 있습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청년예배를 위해 잘 드리기 위해 준비하는 청년이 많지 않습니다. 예배 담당자들이 주보를 보고 나서야 자신이 사회와 기도 순서인 것을 알고 서둘러서 준비합니다. 어떤 때는 주보의 기도자 명단과 실제 그날 예배 시간에 기도한 사람이 서로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정해진 예배 시간에 미리 와서 예배를 준비하기보다는 찬양 몇 곡 부르고 난 후에야 어슬렁거리며 예배실에 나타납니다. 이렇게 예배를 준비 없이 드리면서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경험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태만하고 무성의하고 정성을 다하지 않는 예배는 영적인 분위기를 죽이는 독과 같습니다. 청년예배가 침체되고 영적인 부흥이 사라지는 근본적인 원인이 예배다운 예배를 드리지 않는 자세에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메마름
주님께서 우리를 자유인으로 부르셨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무거운 짐들과 육신에 속한 욕망과 죄 때문에 부자유하고 억눌린 상태로 예배에 참여합니다. 그런 메마른 심령으로 나왔을 때 이것을 채울 만한 은혜를 구하고 찾지 않아 메마른 상태 그대로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가서 영혼의 상한 심정을 해결하겠다는 의지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내면적이고 영적인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음을 깨닫고 주님께 영원히 솟아나는 생수를 구하였습니다. 주님과 사마리아여인과의 대화에서 영원한 생수를 얻는 일이 예배와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요 4:19-26)
예배는 영적인 메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를 초청하는 하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며 그분이 주시는 양식을 공급받는 자리입니다.
창조성의 결여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단조롭고 지루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예배의 새로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배를 위한 준비가 미흡하고 예배를 어떻게 드리느냐에 대한 깊은 생각과 마음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예배는 항상 새로움과 창조의 정신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 공동체가 마음을 합해서 예배를 준비하는 정성 없이는 창조적인 예배는 불가능합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우리에게 편한 예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예배 순서대로 드리기만 하면 예배는 무사히 마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순서에 창조적인 새로운 내용을 담으려는 시도는 별로 없습니다.
예배 순서에서 창조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합니다. 설교 시간에는 설교자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창조성이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가령 설교 전에 설교 주제와 관련된 드라마를 상연하고 그 다음에 설교가 이어져서 설교의 내용이 시청각적으로 전달될 수 있게 합니다. 찬양시간에는 입으로 찬양할 뿐만 아니라 몸을 사용하여 율동과 워십 댄스로 찬양 드립니다. 이런 예배의 순서는 우리에게 주신 창조성과 몸 전체의 감각을 이용해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향한 경배를 드리고 예배자의 믿음을 표현하는 예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배를 위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청년예배를 위해 예배 담당자들이 미리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배를 준비 없이 드리는 안일하고 잘못된 태도를 교정하고 예배 드리는 올바른 마음과 자세를 교육하는 모임을 가집니다.
예배 담당자 준비 모임
주일에 청년 대학부 예배가 있다면 예배 인도자들은 토요일에 모여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자의 마음과 자세를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 예배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필자의 교회 청년부는 토요일에 찬양모임으로 모여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을 통해서 주일 예배를 준비하는 시간을 다집니다.
설교자 준비
예배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설교사역입니다. 설교가 예배자들의 영적인 갈급함을 채워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없이 영감 있는 설교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설교자 자신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따르기 위해서 기도로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시간에 쫓겨서 토요일 저녁이나 밤 시간에 설교 준비를 하느라고 설교 본문을 놓고 기도 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가지지 못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 목사님은 자신의 성공적인 설교사역의 비결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토요일 저녁이면 교회당에 가서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분은 교회당 의자를 하나 하나 만지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교인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중보의 기도를 드립니다. 질병, 이혼, 사고로 고통 당하는 가정의 교인이라면 그들과 같은 심정이 되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합니다. 죄악과 불순종에 관련되어 있는 교인이라면 예언자적인 책망과 분노를 느낀다고 합니다.
이렇게 토요일 저녁에 간절히 기도하고 난 후 주일에 강단에 서서 설교할 때 예배의 분위기가 영적으로 충만하고 그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 역사 하시는 것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설교는 서재에 앉아서 주석책을 뒤적이면서 설교 원고를 완성하는 것이 설교의 준비 과정의 전부가 아닐 것입니다. 그 설교를 선포하는 대상이 누구이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전하여야 할 말씀인지 깊이 생각하며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설교자가 먼저 예배를 위해 모범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며 그 설교자의 헌신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깊은 영적인 감화를 줄 것입니다.
경배(예배) 인도자를 세울 것인가?
청년 대학부 모임은 성가대 조직이 없습니다. 예배에 찬양 팀이 찬양을 인도하고 청년부 임원들이 돌아가면서 예배 순서를 담당합니다. 찬양 팀이 없는 경우에는 임원들이 중심이 되어 예배를 인도합니다. 예배의 찬양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세워야합니다.
경배(예배) 인도자의 역할
경배 인도자는 예배의 찬양을 통해서 회중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을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자신은 예배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면서도 그의 시선은 하나님께 향하여 있어서 그들은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는 예배의 찬양을 인도하고 성령께서 예배 가운데 인도하시는 역사를 민감하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인도하는 영적인 예민함을 가지도록 노력합니다.
경배 인도자에게 음악적인 탁월함을 요구합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에 경배 인도자는 이 찬양이 올바르게 불려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경배 인도자는 찬양만 인도하는 것으로 그의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회중들이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말씀을 근거하여 권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권면의 부분이 경배인도자와 설교자와 갈등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필자가 경험한 경배인도자 가운데는 찬양을 인도할 때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고 자신이 마치 설교자인양 가르치려 드는 인도자가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설교자나 다른 청년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줍니다. 경배 인도자는 꼭 필요한 멘트 이외에는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회중들에게 필요한 권면을 할 때도 겸손한 자세로 말하고 그 내용이 길어지지 않도록 준비합니다.
경배(예배) 인도자와 찬양팀
예배의 찬양을 위해서 싱어와 악기 연주자들이 조직이 되어 예배를 위한 찬양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들은 전적으로 예배를 위해서 찬양을 준비하여 드릴 수 있는 모임을 가집니다. 경배 인도자는 찬양 팀이 예배의 음악을 연주하고 부르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들의 준비가 예배의 영적인 분위기에 크게 작용을 합니다.
청년 중에 경배 인도자를 세웠을 때에 한 사람이 계속해서 매 주일마다 예배의 찬양을 인도하는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특별히 잘 훈련된 경배 인도자이고 그의 생활이 안정되어 있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청년들의 시기는 변화가 많은 때이기에 안정적으로 꾸준하게 인도하는 경우가 어렵습니다. 경배 인도자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떠나야할 때 그 공백이 너무나 큽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찬양 인도의 책임을 계속해서 지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경배 인도자를 한사람으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찬양을 인도할만한 인도자를 몇 명을 세워서 돌아가면 인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각자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예배에 사용되는 악기 문제
교회 예배 시간에 악기 사용은 대단히 예민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하는 피아노, 오르간, 관현 악기는 교회 예배 시간에 연주하는 데는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디사이저, 전자 기타, 드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교회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세속적인 악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부감에는 전자악기가 대중음악을 연주하는데 많이 사용되는 악기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악기 자체가 악하거나 세속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어떤 자세로 연주하느냐는 것, 어떤 곡을 연주하느냐는 것을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전자악기를 다 세속적인 악기라고 취급하는 데는 무리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오르간도 대부분 전기로 소리를 내는 전자 악기라고 합니다. 전자 음악은 세속적이고 전통적인 악기는 세속적이 아니라고 하는 흑백논리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전자 악기를 교회의 악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전자 악기들은 아직 신학적으로 교회 악기로 검증되지 않은 악기라는 점입니다. 처음에 피아노가 세속적인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악기라고 교회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피아노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교회의 악기로 공인 받아 오르간과 함께 나란히 예배 시간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예배에 사용될 수 있는 악기인지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서 교회의 예배에 사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악기 사용에 있어서 오랫동안 내려오는 교회의 전통과 교인들의 정서를 무시하고서 사용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어느 악기도 절대적으로 신앙적인 악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시편에 나오는 수많은 악기가 성서적인 악기라고 해서 오늘날도 그 악기를 사용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악기들은 지금 모두다 사라져 버린 악기입니다.
악기에 대해서 보다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청년 예배에 있어서 대다수의 청년들은 신디사이저, 베이스 기타, 드럼을 세속적인 악기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들 세대에 있어서는 이런 악기의 연주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경건한 신앙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자신의 음악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예배의 음악에 있어서 보다 예배를 창조적으로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나 악기에 따라서 신중하게 선택하거나 고려해야할 악기가 있습니다. 가령 드럼의 경우, 그 소리를 잘 조절하지 않으면 상당히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려서 찬양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이 악기를 예배 시간에 사용하는 것은 그 교회의 정서를 고려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예배 사역의 가능성
최근에 나온 '열린 예배 실습보고서' 라는 책에서 미국 그랜드레피스에 있는 갈보리 교회에서 실시한 열린 예배에 대한 경험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모임에 사용되는 음악이 교회 내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일의 전통적인 예배에 사용되는 찬양에 익숙한 교인들은 열린 예배에 사용되는 록스타일의 음악이 너무 시끄럽다는 불평을 제기하였습니다.
열린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님도 그 의견을 받아들여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결과 몇 달 사이에 젊은 대학생 중심으로 300명이 그 예배에서 떨어져 나가는 현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다시 열린 예배의 음악을 록 스타일로 환원했다고 합니다. 열린 예배는 불신자를 대상으로 드려지는 예배 형식이기에 기존의 예배와는 근본적으로 구별해서 드린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편안하게 교회에 나올 수 있는 분위기와 쉽게 적응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먼저 교회에 대한 불편한 요소들을 제거하고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시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음악이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열린 예배의 대상자들에게 맞는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그들을 인정하고 초대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청년 예배의 사역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음악에 대한 입장과 청년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교회 음악에 대한 견해가 서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 동안 나름대로 이어온 전통이 있기에 자기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입장이어서 새로운 음악을 수용하는데는 지나치게 인색하고 경직되어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배는 그 형식이 절대불변의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만일에 그것이 고정된 것이었다면 성경에서 그 예배의 순서를 규정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의 형식이나 장소가 예배의 근본 정신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하십니다.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심으로 예배의 중심이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찬양음악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그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길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찬양을 하는 젊은이들이 경건과 진실함을 가지고 경배와 찬양을 드린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교회 청년 대학부의 젊은이들이 참된 예배자로 배우고 성숙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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