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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중국 남조 ‘닮은꼴 유물들’ 어떤 인연?

예성 예준 아빠 2010. 4. 29. 20:16

백제-중국 남조 ‘닮은꼴 유물들’ 어떤 인연?

한·중 학자들 난징서 워크숍

 

» 맨 위 사진부터 지난 19일 난징대에서 열린 한·중 학자들의 육조문물 워크숍 모습(서 있는 이는 토론의 좌장을 맡은 허윈아오 난징대 교수).
최근 발굴된 유물 싸고 팽팽한 문답

“백제 도읍인 부여성 바깥에 쌓은 나성을 동아시아 최초로 추정하지요.”

“무슨 말씀인지…, 중국 남조에도 도시 외곽 성터는 이전부터 있었어요.”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중국제 항아리 안에 복어 뼈가 있었어요. 복어 젓갈이 아닐까 싶은데…”

“우리도 있어요. 저장성 사오싱(소흥)에서는 옛적부터 복어 젓갈을 삭혀 먹었지요.”

“그럼, 중국에서 젓갈도 수입했을 가능성은…”


» 장두 박물관에 전시된 무령왕릉 출토품과 똑같은 모양새의 자루 달린 청동 다리미, 양저우 박물관에 있는 박산형 향로. 백제금동대향로와 기본 얼개가 같다.
점잖은 대화 속에 열띤 주장과 반론, 질문과 답변이 오고갔다. 서로의 날카로운 눈빛에 회의장엔 긴장감마저 감돈다. 지난 19일 낮 중국의 고도난징의 난징대 역사학부 4층 강의실. 3~6세기 백제와 중국 남조의 교류를 연구하는 한·중 연구자 14명이 모여 난상토론을 펼쳤다. 내용이 민감했다. 3~7세기 백제 유적과 토기, 공예품들은 비슷한 중국 남조시대 유물들과 어떤 인연일까. 판박이인가, 아닌가. 난감한 논란거리를 놓고 양국 학자들의 첫 워크숍 토론은 9시간 이상 이어졌다.

워크숍을 꾸린 이들은 10여년째 백제-중국-일본의 고대 문화교류사를 연구해온 국내 고고·문헌·미술사학자 모임인 육조문물연구회 회원들. 최근 풍납토성과 부여 수촌리, 왕흥사, 미륵사터 등 백제 유적에서 중국 남조 계통 청자와 공예품 등이 잇따라 나오면서, 답사의 발걸음도 더욱 바빠졌다.

 

육조 시대는 3~6세기 중국 양쯔(양자)강 주변 강남에 오, 동진, 송, 제, 양, 진의 여섯 왕조가 들어섰던 때다. 건강성(난징)에 도읍한 이 왕조들에서 만든 청자, 공예품, 벽돌 무덤 등의 문물은 유독 백제에서만 집중 출토된다. 그래서 당시 교류 관계의 주도권을 놓고 한·중·일 학계에서 논란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난징시 박물관, 난징대 쪽 연구자들과 함께 마련한 이날 워크숍은 원래 백제 고고, 미술의 최근 연구 성과 등을 소개하며 중국 쪽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백제 문물을 도성(성정용 충북대 교수), 도자기(권오영 한신대 교수), 중국산 화폐와 도장(조윤재 인제대 교수), 불상(강희정 서강대 연구교수), 사리기와 금속공예(주경미 부경대 연구교수)로 나눠 발표하고, 중국 쪽에서 남조 도읍인 옛 건강성의 발굴 성과를 들었다.

 

“궁금한 게 더 많으니 도움 말씀부터 부탁드린다”는 권 교수의 인사말처럼 상대편 새 유물에 갈증을 느껴온 두 나라 학자들의 질문 공세가 내내 계속됐다. 가장 주목받은 건 왕흥사, 미륵사터에서 출토된 사리기와 사리병, 금속 공예품에 대한 주 교수의 발표였다. 난징 학자들은 섬세한 형태미를 지닌 백제 사리용기와 금판 명문 등을 놀란 표정으로 주시했다. 권 교수와 중국 학자들 사이에는 풍납토성에서 나온 얼굴 모양 와당과 유약 입힌 도기의 중국 제작·백제 반입 연대를 놓고 논쟁도 이어졌다.


 

» 양저우 박물관에 전시된 닭 머리 달린 흑유병(계수호)과 사자 모양 청자 용기

★*… 남조 유적은 이미 10년 전부터 국내 학계에서 답사 교류를 진행해왔다. 그럼에도 갈 때마다 ‘백제 고유의 문화재가 하나씩 없어진다’는 농을 던질 정도로 백제 유물과 빼닮은 막대한 육조 유물·유적들이 잇따라 쏟아지는 상황이다. 2000년대 초부터 난징의 도시 재개발로 옛 유적에 대한 발굴이 확대되고 있는 까닭이다.

 

워크숍에서도 난징시박물관 연구원 왕즈가오가 시내에서 처음 확인된 옛 남조 왕성의 성벽 윤곽과 함께, 한국 고대 삼존불상과 꼭 닮은 불상의 출토 경위를 공개해 분위기를 술렁거리게 했다. 백제 문화와 잇닿는 와당, 시유 도기, 정원석, 절터 등은 한국 학계의 관심 덕분에 중국 쪽에서 뒤늦게 연구에 나서게 됐다는게 회원들 귀띔이었다.

 

양쯔강 대운하 길목인 난징 인근 양저우와 장두의 박물관 답사 또한 새 발견의 연속이었다. 무령왕릉 출토품과 똑같은 자루 달린 다리미와 백제금동대향로와 기본 꼴이 같은 박산 향로, 닭머리 흑유병, 청자 사발 등을 볼 수 있었다. 첫날 찾은 난징의 도심천 진회하 기슭의 옛 안료공방 터 발굴장에서도 나막신(딸깍발이)과 문서철용 목간, 백제 것과 똑같은 세발 달린 벼루, 풍납토성 분위기의 유약 입힌 큰 항아리 등이 국내 학자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인구 100만을 넘은 세계적 대도시였던 옛 건강성의 영화와 백제의 교류상을 짐작하게 하는 유물들. 한·중이 함께 내력을 찾아야 할 유물들이 너무 많다는 것, 국내 남조 전문가들을 더 많이 키워야 한다는 등의 과제가 남았다. 풍납토성 발굴 주역인 권오영 교수는 “이번에도 역시 숙제만 잔뜩 짊어지고 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난징/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난징서 출토 백제 일광삼존불 ‘판박이’ 공개

 

» 중국 난징 시내 재개발 공사장에서 출토된 남조 시대의 도금동조상(일광삼존불·왼쪽)과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계미 명 금동삼존불(국보 72호). 광배의 무늬, 불상의 얼굴·자태 등이 거의 비슷하다.
난징의 육조문물 워크숍에서 한국 참가자들이 얻은 가장 각별한 ‘선물’은 현지에서 최근 출토된 삼존불상이었다. 한국 고대 불상의 원류로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국내의 일광 삼존불(광배 하나에 가운데 부처와 양옆에 받드는 보살상을 새기거나 붙인 불상)들과 전체 모양은 물론 얼굴 표정까지도 거의 닮은 유물이 정식 공개된 것이다.

 

중국 쪽에서 이름 붙인 이 불상의 이름은 ‘도금동조상’. 구불구불한 화염 무늬가 이글거리는 듯한 광배에 부처와 양옆의 보살상이 은은한 미소를 띤 얼굴로 조각되어 있다. 뒷면에는 ‘대통원년’이라는 6세기 초반(535년) 양나라 때 연호가 새겨져 있었다. 불상을 공개한 난징시 박물관 연구원 왕즈가오는 2008년 난징 도심의 신가구라는 재개발 지구 공사를 앞두고 긴급 구제발굴 도중 다른 불상 조각들과 함께 이 불상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 난징에서 도금동조상과 함께 나온 비슷한 모양의 광배 조각.

이 삼존불 발견은 국내 불교 미술사학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뿌릴 것으로 보인다. 우리 고대 삼존불상의 시원이 중국 북조(남조와 대립하며 중국의 중원 북쪽을 다스렸던 북위, 북주 등의 이민족 왕조)가 아닌 중국 강남의 남조에서 흘러왔다는 것을 입증하는 최초의 구체적인 물증인 까닭이다. 현재 국내에 전하는 고대 일광삼존불상은 현재 계미년(563년) 명이 새겨진 백제 추정 금동 삼존불(간송미술관 소장)과 신묘년(571년) 명이 새겨진 고구려 추정 금동 삼존불(개인 소장), 정지원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백제 추정 금동 삼존불(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등이 있는데, 중국과의 양식적 영향 관계는 그동안 수수께끼에 싸여 있었다.

 

남북조 시대 두 왕조의 중간 접경 지역인 중국 산둥성 주청(제성)현 등에서 출토된 삼존상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었다. 김리나 홍대 명예교수 등의 일부 불교미술사학자들은 산둥성이 남조 한인 문화의 영향권이었다는 점 등을 들어 남조 불상이 원류일 것이라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펴왔지만, 추정 단계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난징시 박물관 쪽이 워크숍 뒤 공개한 다른 삼존불의 광배 조각들에서도 국내 삼존불들과 크게 닮은 화염문, 연화문, 불룩 솟은 융기문 등이 확인돼 일광 삼존불의 남조 영향설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될 전망이다. 불상을 분석한 강희정 서강대 연구교수는 “광배 장식, 얼굴 표정 등이 너무 비슷해 국내의 기존 일광삼존불들도 과연 당시 국내에서 만든 것인지 논란이 일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불상이 있던 절터의 내력과 불상이 안치된 경위는 영원히 미궁에 묻힐 것으로 보인다. 애초 불상은 공사장에서 드러난 남조 시대의 옛 우물터를 포클레인으로 허물어뜨리고 파낸 흙더미 속에서 여러 불상 파편들과 같이 발견됐다. 그러나 인부들이 조각들을 대부분 고물상에 팔아넘겼고, 우물터도 파묻혀 그 위에 고층아파트와 상가가 빽빽이 들어선 상태다. 재개발 광풍 속에 고대 한·중 불상 교류의 소중한 단서가 날아가버린 셈이다. 난징대의 허윈아오 교수는 오는 30일 대전에서 열리는 호서고고학회에 참석해 이 불상의 발견 사실을 국내 학계에 공식 보고할 예정이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