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스승의 날
특수학교 교사인 나에게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스승의 날이 있다.
제주도에서 근무할 당시 우리 반 학생이었던
명길이에게는 그 아이가 큰엄마라고
부르던 분이 있었다.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정신지체 장애인을 둘째 부인으로 맞았는데
그 사이에서 명길이와 명길이 형이 태어났다.
아버지의 첫째 부인을 명길이는 큰엄마라고 불렀다.
어느 날 가정방문을 갔다가 명길이네 가정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도 힘든 정신지체 장애인 명길이 친어머니에,
대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아버지,
정신지체 학교에 다니는 명길이 형제까지...
큰어머니는 홀로 그 모진 생활고에 맞서가며
다섯 식구를 어렵사리 돌보고 있었다.
가정방문을 마치고 라면과 과자 한 박스를 사서
명길이 품에 안기고 나오는데 자꾸만 명치가 아파왔다.
그 후로 자주 명길이네 집을 방문해 큰어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학교에서 장학금 대상자에 명길이를 올려
장학금을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썼다.
그해 5월 15일 스승의 날,
퇴근시간이 다 되어 명길이 큰어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무조건 집으로
급히 오라고 했다.
혹시나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서둘러서 달려갔더니 집 앞에서 큰어머니가
한 손에는 양동이를, 다른 한 손에는
무언가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기다리고 계셨다.
양동이에는 물고기 다섯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고
검은 비닐봉지에는 말린 고사리가 담겨있었다.
아버지가 아픈 몸을 이끌고 아침나절부터
낚시를 해 잡아온 물고기와 큰어머니가
4월부터 산속 깊은 곳에서 손수 따와 정성껏
삶고 말린 고사리였다.
마음으로 받았으니 됐다고 사양을 해도
한사코 건네시며 양동이와 검은 봉지를
나의 양손에 꼭 지어주셨다.
가슴 벅찬 기쁨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상 그 어떤 값비싼 촌지와도 바꿀 수 없는
명길이네 가족의 가슴 따뜻한 선물을 생각하면
내 마음에는 어느새 따뜻한 봄 햇살이 쏟아진다.
- 새벽편지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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