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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학생을 변화시키는가?

예성 예준 아빠 2009. 1. 26. 08:43

무엇이 학생을 변화시키는가?


안석모(목사, 감리교신학대학 교수․목회상담)

예수께서 그에게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 하시니, 그 사람은 곧 나아서,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갔다.
(요 5:8-9/표준새번역)

베데스다 연못가에 삼십팔 년이나 누워 있던 병자를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고쳐 주셨다. 말로써 병을 고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이적이나 기적으로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말의 힘을 체계적으로 알지 못하던 시대의 일이다. 그러나 말로써 치료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더 이상 이적도 기적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계를 섭리하시고 운용하시는 이치요, 나아가 자연(自然)한 것이다.
상담의 물결이 우리 한국 사회와 교회에 파도쳐 온다. 서구화의 물결이라 하기도 하고, 급변하는 세대의 징조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는 언어의 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일 뿐이요, 우리 삶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는 데서 나타나는 신기한 통찰일 뿐이다. 특히 언어철학의 발흥과 함께 우리의 삶이 얼마나 언어로 이뤄져 있으며, 사고와 행동이 얼마나 언어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일 뿐이다.
상담요법 -삶의 지혜를 찾아서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는 도전과 그에 대한 응답으로 그 생명이 이어진다. 이를 문제와 해결이라는 도식으로 푼다면, 상담이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모색하는 도움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란 것이 대체로 사람의 인생에게는 세 가지의 모습으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게 왜 이럴까? 라는 흔돈과 무의미에 대한 명료한 해답을 찾는 것이 첫째요, 둘째는 '이것을 택할까 저것을 택할까? 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어려움이다. 저것을 이루어야겠는데 그게 이루어지지 않아 고통을 보는 모습이 마지막이다. 첫째는 해석의 문제요, 둘째는 선택의 문제, 그리고 셋째는 치유의 문제라고 포괄적으로 이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형태의 문제는 개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하나의 문제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함께 존재한다.
상담요법이란 다름아닌 이 해석과 선택과 치유를 향해 나아가는 삶의 지혜이다. 서울에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이 인생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길도 결코 하나가 아니다. 더욱이 하나의 길은 다른 길에 비겨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또한 절대적인 길이 있을 수도 없다. 절대적인 것이 있다면, 이 모든 문제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의 근원이요 바탕이며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의 섭리뿐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상담요법이란 기실 삶의 지혜요, 지식이며 때로는 삶을 살아가는 방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상담요법이란 말을 사용하여 우리는 그 지혜를 분류하고 해명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현대의 상담요법들이 보다 체계적이며 조직적인 형태로, 일종의 방법론과 그 이론을 바탕으로 실천과 결과를 합리적으로 구성하는 실험적 형태를 갖춰 발전, 모색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상담요법을, 광범위한 삶의 지혜를 찾아 그것을 일상에서 살아나가도록 하는 전통적인 요법과 이론과 방법을 체계적으로 적용하여 그 결과를 모색, 해석하는 현대적인 요법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둘은 결코 배타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 내지는 합치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전통적 상담요법
상담이란 보편적 인간 존재 양식이요, 따라서 각 문화마다 독특한 상담 방식이 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점이나 무속 혹은 훈장이나 마을 집안 어른의 훈계나 지침이 상담의 토속적 형태를 이뤄 왔음은 쉽게 이해할 만하다. 이를 일컬어 우리는 전통적 상담 방식 혹은 토속적 상담요법이라 말할 수 있다.
현대 상담의 한 획을 긋는 칼 로저스는 전통적 상담이 주로 훈계나 제시, 지시적 언어나 일방적 해석 등의 형태를 지녔기에 부정적 요소를 갖춘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서 이런 토속 전통적 상담 방법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문화인류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토착문화에 대한 재해석 ,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이런 점이 보다 심화되고 있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무속 행위나 토속적 치료 행위들이 비록 그 신앙 시스템은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위로하며 그들의 삶에서 순기능을 하는 어떤 심리적․사회적 요소들이 내재하고 있음이 비로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뜻에서 전통문화나 토속적 신앙행위에 상담적 요소나 치료적 제의가 있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고, 특히 문화 내적인 상황에서 꾸짖거나 훈계하는 것이 지니는 상담적 효과나 의미를 재해석, 재평가해야 함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필자의 친척 중의 한 분은 한국 서양 의료계의 원로이신데, 그분은 젊은 환자가 찾아왔을 때 별로 중한 병이 아니면 그냥 꾸짖어 내보내시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젊은 사람이 왜 이런 것으로 병원을 찾아왔느냐고 꾸짖고 그냥 보냄으로써 오히려 사랑과 관심, 병에 대하여 겁을 먹지 않는 태도, 동시에 그의 재정이나 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한, 일종의 영혼의 치료를 통한 육신의 치료를 행하는 분으로 유명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허균이 말하는 심의(心醫)라고나 할까. 실제로 이런 방식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약으로가 아니라 그냥 낫는 경우가 많았음이 친척들 사이에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 삶의 지혜에서 상담의 요체가 발견되는 것이라면 이런 요법은 그 본질상 상식과 사랑과 건전한 삶의 태도 등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운동이 건강에 유익하고 기도가 심신의 안녕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등식의 지혜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 삶의 지혜는 올곧고 진솔한 삶에로의 지향이요, 상담요법이란 곧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모든 상담의 기본이요 최후의 요체라 생각한다면 기술적인 의미의 요법으로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의미로서의 요법이 바로 이 전통 상담요법이라 보아 무리가 아니다.
비교상담학자요 비교정신의학자로 유명한 제롬 프랭크나 아더 클라인만, 그리고 모든 상담학자들이 상담의 요체를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의 질에서 찾는 것이 바로 이 전통적 상담요법을 가리키는 것이라 보면 틀림이 없다.
현대적 상담요법
언어로써 사람의 마음과 생활을 돌보고, 치료하며, 지지해 주는 상담요법에 대한 현대적 출발을 20세기 초엽의 정신분석이론으로 보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물론 현대적 심리학의 출발이 독일의 빌헬름 분트 같은 학자의 실험심리를 통하여 이뤄지고, 체면술이나 기타 행동주의 심리학 등이 비슷한 때에 출발하였음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언어와 언어적 활동이 사람의 신체나 정신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생각하면서 체계적인 상담의 모습을 띤 것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치료였다.
그러나 이 정신분석치료의 출발은 프로이드 자신이 어원이 아니라, 안나 오(Anna O)라는 유대인 처녀와 요제프 브로이어(Joseph Bueuer)라는 의사 사이에 벌어진 사건에서 유래한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정이 예민하던 유대인 처녀가 늙은 아버지를 간병하다가 -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 신체가 마비되고 언어 활동이 중단되는 특이한 심신 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갖가지 증세가 나타나기를 무려 1년 반, 매일 그녀를 왕진하던 의사 브로이어가 하는 일이라고는 별것이 없었다. 어느 날 안나가 자기의 하루 일과를 의사에게 이야기하면 증상이 상당히 경감되는 것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마침내 브로이어는 최면을 걸어서라도 안나에게 이야기를 시키게 하였고, 이를 조직적으로 착안하여 안나의 히스테리 증세를 치료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물컵이 입에 닿기만 하면 정신이 나가면서 그것을 밀쳐 버렸던 것이다. 결국 이 증상은 그녀의 집에 찾아온 손님의 개가 사람이 마시는 컵에 입을 대고 물을 핥아먹던 광경과 그에 대한 혐오스러웠던 감정을 표출하면서 깨끗이 나아 버렸다.
선배 의사였던 브로이어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은 프로이드가 후에 자신의 환자들에게 이를 조직적이며 체계적으로 적용하여 현대적 정신분석치료법을 발견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현대적 상담요법의 여러 가지 요소를 그 안에 지니고 있었다.
첫째는 이야기의 힘이다. 사람이 자신이 곤경과 어려운 점들을 누군가에게 말로 풀어 낼 때 그것은 단순히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는 점을 넘어, 일종의 치료적인 효과까지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말이 지니는 힘을 새삼 발견한 것인데, 이는 모든 상담의 근원이기도 하다. 언어는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약이라는 것을 이미 희랍의 시인들은 설파하고 있었고, 마음 속에 뭉쳐 둔 말은 영혼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맥베드 연극에도 나오는 유명한 대사이다.
둘째는 감정이 지닌 힘이었다. 안나로 하여금 물을 못 마시게 만든, 의식을 넘어선 지경에서 막강한 힘을 발취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컵을 입을 대고 마시는 개에 대한 영상과 그에 수반되는 강렬한 혐오의 감정이었다. 즉 마음 속의 감정이 신체적 변화까지 수반한 힘이 있음이 실증되었다는 말이다. 특히 감정이 어떤 심상(心象)과 연관될 때, 그것이 지니는 힘은 상징과 메타포로서의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셋째는 통찰의 힘이다. 이야기를 통하여 자신의 내면적 상황이나 외적인 상황에 대한 깨달음이 비로소 인식될 때, 그것은 생각이나 행동에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 즉 통찰이 가져오는 어떤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말한다. 프로이드는 이를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의 경계로 퍼 올림으로써" 맹목적인 욕구를 합리적 이성으로 관할한다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말하자면 이성의 합리적 힘이 감성이나 욕구의 맹목적 비합리적인 면을 제어한다는 뜻이다. 그 내용이나 과정이 어찌되었든 깨달음이 있어야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행동에 대한 합리적 이성의 우위가 바로 현대적 심리치료법의 근간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교사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상담요법
현대의 상담요법은 연구소나 치료소의 숫자만큼이나 많고 다양하다. 동시에 상담요법을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연구서들도 그 요법에 대한 분류나 소개에 있어서 참으로 다종 다양한 면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그 숱한 요법들을 크게 분류하면, 대체로 다음의 네 가지 계열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첫째는 정신 분석과 그에서 유래된 심층적 역동성을 중시하
는 요법들이다. 둘째는 행동주의 심리학과 인지 심리에 근거하여 심리적 장애를 주로 과거 체험에서 우러난 학습이나 왜곡된 인식구조로 설명하면서, 증상과 그에 대한 대처를 중심으로 하는 요법들이다. 셋째는 인간의 타고난 능력과 그 가능성을 중시하면서, 모든 심리적 장애들을 잘못된 인간관계나 잘못된 삶의 태도 등에서 찾으며, 이를 재체험하고 재해석함으로 새로운 삶에로 인도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주로 약물이나 수술 등의 물리적․화학적 방식을 주로 사용하면서 내외의 환경 등을 교정함으로 치료를 얻고자 하는 방식이 있다.
교회학교 교사들이 전문가들의 상담실에서 조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담요법들을 교회학교 상담 셋팅에서 활용하기를 기대함은 지나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상담요법들의 원리나 심리적 역동성(Dynamics)을 이용하여 학생들을 돕고 그들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폄은 바람직한 일이요, 또한 창조적인 일이기도 하다.
우선 안나의 사례에서 명확하게 들어날 뿐 아니라, 모든 상담에서 기본적으로 채택되고 있는 '이야기하기' (story telling)를 예로 들어 보자. 상담이란 삶의 이야기이다. 삶을 이야기함으로써 내담자는 자신의 정황에 대하여 객관화라는 기회를 가져 보고, 얼크러진 사건들을 이야기로 일관되게 펼쳐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어떤 의미를 발견하거나 해결책을 모색하게 되는 법이다. 아니면 이야기 자체를 통하여 어떤 감정의 확인이나 표출을 경험케 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학교에서 흔히 들려지는 이야기, 또는 동화의 구연, 나아가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말이나 글로써 표현하는 기회를 주는 것은 상담적 효과를 직간접으로 얻게 하는 것이다. 가난하거나 결손이 된 가정의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어떤 선교회에서는 그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어려운 상황을 글쓰기로 표현토록 한다. 그것은 단순히 글을 쓰도록 훈련하고 공부시키는 효과만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하게 함으로 스스로를 돕게 하는 최상의 상담 방식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창작동화 구연대회, 성경이야기를 자신들의 생활에 맞게 바꿔서 이야기해 보기, 책을 읽은 다음에 그 속의 주인공들이 느끼거나 가졌을 생각이나 마음의 움직임을
이야기해 보는 것 또한 매우 좋은 상담요법의 응용이다. 또 "내가 성적표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는 날은…" 하는 식의 완성되지 못한 문장을 주고, 그 뒤를 자신의 말로 완성하게 해 보는 방법 또한 학생들을 돕는 좋은 방법이다.
흔히 위와 같은 상담 방법을 정화식 혹은 카타르시스식 방법이라고 이름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이야기와 같은 상징구조나 겉으로 드러나는 텍스트를 통하여 속에 들어 있는 내밀한 것을 직간접으로 표현한다는 면에서는 정신분석적 방법과 맥이 닿아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네 가지의 상담치료법에서도 요즈음 구미에서 새로이 그 변화의 힘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 인지요법이다. 이는 사람의 행동이나 느낌이 그 사람의 독특한 인지적 구조, 혹은 생각하는 틀, 또는 머릿속의 지도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가정하에 인지의 틀을 바꿈으로 그 행동과 느낌을 바꿀 수 있게 해 주는 요법을 말한다.
흔히 우등생일수록 공부에 더욱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신에 대해 더욱 가혹하거나 자긍심이 공부를 잘하는 것만큼 높지 않다는 것이 자주 발견되곤 한다. 예를 들어, '나는 항상 1등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있을 경우, 그가 시험이나 성적 평가가 있을 때마다 얼마나 고통 속에 잠길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경우 '1등도 좋지만 상위권에 있으면 됐지, 꼭 1등이어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라는 인식을 그 학생이 갖는다면, 그의 심리내면적 생활이나 학교생활은 참으로 달라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학교가 기독교 신앙이나 설교, 성경공부, 혹은 교회학교내의 새로운 가치관과 의미체계 같은 것을 학생들이 체험케 함으로 그들의 '인지 지도'(cognitive map)를 바꾸어 주는 것은 참으로 큰 상담요법의 효과를 지니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학생들이 둘러앉아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서로의 다른 관점들을 공유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인지 지도를 점검하고 바꿔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은 교회학교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상담적 접근방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학교의 설교나 성경공부가 상담적으로 접근할 때 참으로 좋은 기회와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부러 상담실을 찾지 않더라도 바로 이런 예배나 공부를 통하여 상담요법상의 원리를 원용하면서 우리 학생들을 기독교 신앙과 예배의 힘을 빌어 그들을 보다 건강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양육하고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