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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의 변신은 무죄? (마 9:14-17)

예성 예준 아빠 2010. 2. 11. 20:22

중등부의 변신은 무죄? (마 9:14-17)


사람은 자기든지 혹은 타인이든지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TV프로가 새롭게 바뀌기를 원하고 밥상위에 올라오는 반찬이 매일 바뀌기를 원하고 또 항상 새로운 옷과 신발을 신기를 원합니다. 이 새롭게 된다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러하기에 또한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습은 영영 바뀌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곤 합니다. 바뀐다는것 즉 변신 그것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저희 신학 대학원에 농아 한분이 계십니다.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제가 수화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하거든요. 제가 좀 그래요.
그런데 그분은 선천적으로 농아가 아니었습니다. 후천적이었지요. 고등학교 3학년때 거리에 대형 스피커 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그것이 터지는 바람에 고막이 터졌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오른쪽은 70%정도 살아있었는데 대학교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공사장에서 진동소리로 그만 그마져 남아있던 청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농아가 되어버린 그 모습에 그는 그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내가 농아가 되다니, 나는 분명히 듣지 않았었는가?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 그리고 친구들의 목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 무엇이든지 듣지 않았었는가? 그런데, 그런데, 왜, 왜, 지금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왜?'
그때는 예수님도 믿지않았기 때문에 자포자기 내지는 자학, 자신이 미움, 방황, 갈등, 눈물.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제가 익히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학교에서 나온 '로고스'라고 하는 교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서 읽는데 이분이 쓴 수필이 있더라고요. 물론 비슷한 내용이지만. 읽다가 예배 시간이 다 되어서 예배당에 들어갔는데 도무지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 없을것 같아서 나와서 땡땡이를 쳤습니다만. 여러분 같이 노래방은 가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루아침에 변해 버린 그 자신의 모습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을까요?

이 분이 자기 모습을 받아들이는데는 7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고 자신을 예수님에게 바치는 삶을 작정하고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한 것이지요.
이분이 자기의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했다면 그는 지금쯤 무엇이 되어 있을까요?
이제 그에게는 시련을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난 뒤의 웃음이 있습니다. 그 절망과 좌절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에 희망과 기쁨이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요한의 제자가 예수님께 따집니다. 우리와 바리세인은 금식을 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 하지 않느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혼인집에서는 신랑과 함께 기뻐해야 한다. 혼인집에 가서 신랑 붙잡아 놓고 꺼이 꺼이 울지 않는다. 만약 그사람이 여자라면 그는 분명 그 남자와 과거가 있는 여자일 것입니다. 신랑과 더불어 기뻐해야한다는 거죠.
금식하는 모습은 그것은 진정한 의미가 있을때는 의미가 있지만 그렇지 않을때는 그것은 영적 생명력이 없는 형식주의적 종교 행위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금식하면서 세상에 드러 내놓고 자랑하면서 기도하는 바리새인들 보다는 홀로 고개도 들지 못하고 고요히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기도하는 세리의 모습을 주님은 더 원하시는 것입니다.

새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새것은 낡은것에 들어가서는 아니됩니다. 이제 달라진 중등부라고 하는 새로운 그릇에 새로운 포도주를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우리 각자 한사람 한 사람이 새롭게 되는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우리의 세계관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가치 습관으로는 도무지 거듭날 수 없는 것입니다.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있으면 죽는 것이지요. 전통이 변화된 상황속에서 변화될 때 그 전통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21세기의 신세대가 입는 배꼽티는 19세기의 우리 선조가 입었던 장옷이나 20세기 우리 부모님이 입었던 몸빼를 그리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시대와 거기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들 '저놈은 누굴 닮아서 저렇게 속을 썩이냐?' 하는데 그것은 부모님의 가치관으로 자식들을 바라보니까 그만큼 맞지 않는 것이 많은 것입니다. 세상은 그만큼 변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등부 오후 모임에 애들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중3 학생들이 꽤나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있을까? 얼핏 듣기에 근처에 있는 연신 노래방에 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연신 노래방에 나가있는 김 기자를 불러본다.

김기자 .
지금이 중등부 오후 모임 시간인데 애들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쪽에 있다는 정보가 있는데 어떻습니까? 그리고 지금 그쪽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썬그라스낀 김 기자 나타난다.)
네. 여기는 연신 노래방입니다. 지금 시간이 오후 1시 35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에서는 중등부 오후 모임을 하고 있는 이시간에 이곳 노래방에서는 몇명의 정체를 알수 없는 남녀 학생들이 집단으로 들어와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한 학생은 완전히 미친듯이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가까이 가 보겠습니다. 네 확인한 결과 중등부 학생들이 열심히 부르고 있습니다. 네 완전히 코메디 입니다.
한 학생과 인터뷰를 해 보겠습니다. 재미있습니까? 교회 다니지요? 3학년이지요? 지금이 무슨 시간인지 알지요? 그런데 여기서 무엇하고 있습니까? 네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죄인은 아무말이 없다. 이상 노래방에서 불광동 뉴스 김 준동 이었습니다. ]

다음의 몇가지를 지킵시다.

1. 주일예배는 드립시다.

저에게도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2학년때인것 같습니다. 모태신앙이어서 주일 성수는 그야말로 칼같이 지켰는데 어느날 갑자기 교회에 가다가 외갓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왜냐하면 TV를 보기위해 갔던 것입니다. 그때 저희 집에는 tv가 없었습니다. 주일 오전에 웃으면 복이와요인가 하는 코메디 프로를 했어요. 그것이 그렇게 보고 싶어서 교회 가다가 헌금 30원인가 가져가다가 과자를 사서는 외가집으로 향했습니다.

외가집이 저희집하고 가까웠거든요. 외가집에 가서 한참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아버지가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아니 이 시간에 아버지가 여기 왠일일까? 화난 아버지는 분명히 저승사자 같았습니다. 집으로 끌려와서는 그야말로 되지게 맞았습니다. 그때 부터 고등학교 졸업하기 까지 한번도 결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대학가서는 많이 방황을 했습니다만.

중등부 임원들 앞으로 한번만더 주일 예배때 그리고 오후 모임 빠져먹고 노래방 가거나 하면 절단낼껴? 노래방 가더라도 주일 예배 다 마치고 오후 모임 다 마치고 갈려면 가 말리지는 않겠어요. 그런데 예배 빠져먹고 갔다는 그런 소리가 들리면 그 다음주 부터 중등부 예배는 노래방에서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쉬는 시간 없이 밥먹는것 없이 계속 노래만 시킬테니까.
그래도 안되면 여러분 이 앞머리가 보이지요.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머리카락 같아 보이지만 이게 단순한 머리카락이 아니고 무기입니다. 성나면 팍 찌를테니까 알아서들 하세요. 이것 스쳐도 최소한 전치 5주는 나옵니다. 정확하게 맞으면 그냥 갑니다. 연신교회 와서는 한번도 써먹지를 못했는데 이제까지 제 후배들 많이 갔습니다. 누가 처음 걸릴지 모르겠지만 조심하세요.

주일날 다른 친척집에 가더라도 그곳에서 교회는 꼭 나가서 예배보기. 시험이어서 빠지고 비오면 귀찮다고 빠지고 날씨좋으면 놀러나간다고 빠지고. 이래서는 아니됩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에도 태양은 떳지요. 항상 일정하게 태양은 뜨고 집니다. 물론 지구가 자전을 해서 낮과 밤이 생기지만. 어쨌든 언제 한번 태양과 별이 게으름 피운적 있습니까? 달이 시험친다고 그리고 별이 비가 온다고 뜨지 않은적이 있습니까?
십계명 제 4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아닙니까? 여러분 어려서 부터 주일 지키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2. 성경 찬송가는 꼭 가지고 나오기.

이것은 상식이고 기본이에요. 하나님에 대한 우리 인간의 최소한의 예의인 것입니다. 안 가지고 나오면 그냥 돌려 보낼테니까 밖에서 슬피울지 말고. 알아서 하세요.
여러분 이 세가지 지킬 수 있지요. 약속했습니다.

고후 5장 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 예수님 안에서 변화된 삶을 살고 그리고 지금까지의 자기의 낡은 가치관과 사고방식과 삶을 버리고 새롭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된 삶을 사는 그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저는 될 수 있는한 사람의 자발성을 원합니다. 강제적으로 무엇인가를 시키지 않습니다. 어떤 위치에 있기에 무엇인가 막 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의 자발성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만큼은 자발성에 맡겨서는 될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제까지 주일을 그냥 대충 지켰다면 지금부터는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주일만큼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이제까지 나의 신앙생활이 그저 교회에 나왔다가 가는 정도였다면 지금부터는 무엇인가 새롭게 주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주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나의 삶의 모습이 그저 믿지 않는 자와 똑같았다면 지금부터는 나의 삶이 무엇인가 조금은 달라지는 그래서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새롭게 되는것. 중등부의 변신, 그것은 무죄입니다.

[기 도]
주님,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주님께 예배들릴 수있는 시간을 주시고 이렇게함께 예배드릴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지금까지 주님의 마음을 서운하게 했다면 지금부터의 삶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