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욕쟁이 할머니 맛집대열전 - 강원도 양양 칼국수

예성 예준 아빠 2008. 6. 26. 23:14
“내 손맛 볼라고 땅끝마을에서도 오는데 욕도 골라서 해야지”

“와 이래 늦게 왔노? 바쁜 사람 기다리게 해쌌더니만. 일단 밥부터 묵고 해라.”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할머니는 기자의 팔을 잡아끌었다. 강원도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욕쟁이 할매’ 서정순씨(77). 작은 체구지만 기운이 어찌나 센지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았다. 이마에 새겨진 주름이 그동안의 모진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지만, 말하는 내내 할머니의 얼굴은 밝았다. “나이 마흔에 과부가 됐어. 젊은 여자가 자식 혼자 키운다고 이치 저치 깔보더라고. 워낙 성격이 괴팍해서 사람 무시하는 꼴은 못 보거든. 그런 놈들한테 욕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됐지. 수틀리면 밥상 여러 번 엎었다카이(웃음).” 할머니는 한 번도 손님들에게 ‘어긋난’ 욕을 한 적은 없다고 자부했다. “손님들한테 욕을 하면 쓰나? 하더라도 음식 값은 받고 해야지(웃음). 돈 안 주면 나만 손해라카이.” 칼국수를 맛보러 해남 땅끝마을에서도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욕을 하지 않아도 서정순 할머니의 카리스마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일단 신발 벗고 들어오면 대통령이라도 계급장 떼는 거야. 이 식당에서는 내가 대통령이라카이(웃음).”

할머니가 주는 건 다 좋은 거니 잔말 말고 묵거라…
식당에서는 정말 할머니가 대통령이었다. 메뉴 판에 있는 음식을 시키자 바빠서 준비 못했다며 다른 것을 권했다. “할머니가 주는 음식은 다 좋은 것이니 아무 말 말고 먹으라”는 엄명(?)도 떨어졌다. 할머니 손맛의 비결을 물었더니 “눈대중으로 대충 집어넣어서 몰라. 옛날 방식으로 음식을 해서 맛있는 거야. 옛날에는 개죽같이 먹은 줄 아는데, 옛 맛이 더 좋은 법이야”라는 대답이다.
욕쟁이 할머니는 ‘양양의 테레사 수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할머니는 지난해 겨울, 김장 김치를 5000포기나 담갔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얻어 담근 김치는 독거 노인들에게 전달됐다. 73년 우연히 폐가에서 혼자 앓고 있는 할머니와 만난 것을 시작으로 지금 돌보고 있는 노인은 40여 명. 할머니는 노인들의 식사를 챙기고, 감을 떼서 직접 옷을 만들어 입히느라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다. “이 미친 짓을 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안카나. 아파 본 사람만 아픈 사람 맘을 다 안다. 이젠 관두고 싶어도 식구들이 많아서 못 그만둔다. 그래도 후회는 안 해. 이렇게 사는 것도 내 복이지. 이만하면 욕쟁이 할머니가 아니라 ‘복쟁이 할머니’ 아이가(웃음).”

욕쟁이 할머니 칼국수 맛 직접 봤더니…
칼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몇 가지 밑반찬이 나왔다. 콩나물 무침과 김치, 오징어 젓갈 등 간단했지만 맛깔스러워 보였다. 김치는 적어도 2년 이상 묵은 김치를 내놓는데, 설탕 대신 과일을 넣어 묵힌 김치는 특유의 군 맛이 느껴지지 았다. 무엇보다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겉절이 무침. 신선한 채소와 새콤달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자꾸 손이 갔다. 양념의 비법을 물으니 “무조건 조미료는 넣지 말라”는 대답이 나왔다. 직접 만든 간장과 참기름, 고춧가루만으로 제 맛이 난다는 것. 할머니는 “어디 한 번 맛도 사진 찍어 보라”며 자신 있게 칼국수를 내려놓았다. 뽀얀 국물이 마치 사골국 같았다. 홍합과 굴, 버섯 등을 넣고 국물을 내서 그런지 담백하고 깊은 맛이다. 콩가루로 만든 국수는 면발이 퍼지지 고 쫄깃쫄깃해 술술 잘 넘어갔다. 국수는 직접 할머니가 만드는데 요즘은 힘이 들어 반죽을 넓적하게 늘리는 기계만 쓴다고 했다. 순두부 역시 할머니가 만든 것. 콩물에 바닷물을 부어 두부를 만들기 때문에 짭조름하니 맛있다. 손으로 만들어 모양이 고르지 았지만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가격_해물 손칼국수 5000원, 해물 순두부 5000원 문의_033-672-4434

양양 욕쟁이 할매 칼국수 제대로 즐기려면…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영동고속도로 대신 44번 국도를 타고 한계령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설악산의 기암괴석과 맑은 계곡을 볼 수 있고 도로가 한적해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양양에 도착해 ‘욕쟁이 할매 칼국수’ 식당에서 칼국수를 먹고 난 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낙산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과 울창한 송림이 조화를 이뤄 경치가 좋고, 모래가 고와 아이들이 놀기에 좋다. 해수욕장 근처의 낙산사 의상대는 관동팔경 중에 한 곳으로 내려다보이는 해안이 절경을 이룬다. 2005년에 화재가 났지만, 지금은 법당이 복원되어 옛 모습을 되찾고 있다. 아이들이 새싹을 틔우는 나무들을 직접 보면 자연과 문화재에 대한 소중함도 느낄 수 있을 것. 낙산사 의상대의 암벽 밑으로는 전진항의 바다가 펼쳐진다. 전진항은 동해안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을 정도로 작고 아담한 항구지만, 몇 척의 배와 등대, 방파제가 어우러진 운치 있는 곳이다. 항구에 늘어선 포장마차 촌에서 철썩거리는 파도를 보며 저녁 식사로 싱싱한 회를 맛보고 돌아오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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